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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프란치스코와 성체성사

by 합창단 2017. 10. 7.

프란치스코와 성체성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그분의 인격에 완전히 몰입되었던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 그리고 그분의 현존과 살아있는 표지인 성체성사는 중심적 위치를 차지했다. ‘성체성사 안에 주님이 생활하시고 살아계신다.’ 제단은 그의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핵심이자 사상과 행동들의 목표였다. 성체성사 안에서, 성체성사를 통하여, 그리스도는 살아계신 실재로서 그에게 오셨다.

 

성체성사는 그의 수도 생활 전체의 초점이었다. 이것은 작은 자의 모습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형제적 사랑의 공동체였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이전의 어떤 성인도 따를 수 없는 깊은 성체 공경을 가졌다. 여러 가지 열렬한 권고로 우리에게 요구하신 것을 당신의 생활과 모범으로 보여주셨다.

 

“프란치스코는 그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 솟아오르는 성체에 대한 사랑으로 불탔다. 그리고 그는 거기에서 보인 주님의 인자하신 사랑과 사랑 넘치는 인자를 보고 넋을 잃었다. 최소한 한 번 미사참례를 안 하면 주님을 대단히 모독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는 자주 성체를 영하였고, 그가 영하는 것을 보면 다른 형제들도 경건한 마음이 생길 만큼 그렇게 경건하게 영하였다. 그는 성체에 대해 마땅히 바쳐야 할 온갖 공경을 다 바치면서 자기 육신 모두를 희생으로 바쳤고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을 받아 모실 때 마음의 제단에서 쉼 없이 타오르는 불길로 자기 마음을 하느님께 희생 제물로 바쳤다”(2첼라노 201)

 

만일, 병 때문에 성당에 못 갔을 때에는 사제보고 병실에서 자신을 위해 미사를 봉헌해 주도록 요청했다.(완덕의 거울 87) 이것마저 불가능할 때에는 그 날의 미사 독서 부분을 읽어 달라고 함으로써 미사에 영적으로 보필하곤 했다. “내가 미사에 참석할 수 없다면 나는 마치 미사에 참례하듯이 묵상하면서 또 영혼의 눈을 갖고서 그리스도의 몸을 흠숭합니다.”(완덕의 거울 175)

 

앞의 구절에서 ‘자기 육신 모두를 희생으로 바쳤다’, ‘마음의 제단에서 쉼 없이 타오르는 불길로 자기 마음을 하느님께 희생 제물로 바쳤다’로 표현되는 이 짧은 문장은 프란치스코가 성체신비를 얼마나 깊게 파악하며 인식하고 있었는가를 분명히 알려준다.

 

그에게 미사 감사제는 단지 하나의 중요한 신심 행사나 경배 행사만이 아니다. 프란치스코는 거룩한 미사성제에서 우리 죄를 기워 갚기 위해 죽임을 당하신 하느님의 어린양과 일치된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와 같이 희생 제물로 자기 자신을 아버지께 바치기 위해, 하느님에게만 속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위해 아무것도 남겨두지 않고 하느님을 위해서만 살기 위해, 자기 육신 모두를 희생으로 바쳤고, 마음의 제단에서 자기 마음을 희생 제물로 바쳤다.

 

프란치스코에게 성체를 받아 모시는 것은 주님의 죽음을 기념하는, 주님의 죽음을 재현하는 바로 그 신비이다. 성체는 죄인인 인간을 하느님과 화해시키는 거룩한 제사이다. 그리스도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주님의 발자취를 따를 수 있도록 힘을 받는 순간은 바로 성체를 받아 모실 때이다. 하느님은 성체 안에서 또다시 당신의 구원 즉, 사랑과 평화를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것이며, 또다시 당신의 피조물들과 화해를 이루신다.

 

프란치스코는 이 사상을 생생하게 표현했다. “나는 여러분들의 발에 입 맞추면서 또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으로 모든 형제 여러분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극히 거룩하신 몸과 피에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존경과 영예를 나타내도록 하십시오. 그분은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평화롭게 하시고, 전능하신 하느님과 화해시키셨습니다.”(형제회에 보낸 편지 12-33)

 

성체성사에 대한 그의 공경심과 사랑은 성체성사와 관련된 것들에 대한 그의 열정을 솟아오르게 한 원천이었다. 세속에 있을 때 그는 성찬 전례에서 사용된 귀중한 장식물이나 성작 등을 구입해서 가난한 사람들과 성당에 몰래 보내곤 했다. 프란치스코는 성 다미아노를 비롯하여 성 베드로 성당까지 차례로 수리했다.

 

성체성사에 대한 그의 신심은 그에게 사제직에 대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공경심을 일으켰으며, 그는 거룩한 성사에 대한 공경심 때문에 그 누구보다 사제들을 존경하라고 형제들에게 늘 권고했다.

 

“로마 교회의 관습에 따라 올바르게 생활하는 성직자들에 대해 신앙심을 가지는 종은 복됩니다. 그리고 이분들을 업신여기는 사람들은 불행합니다. 비록 그분들이 죄인들이라 해도 주님 자신만이 이들을 판단하는 것을 당신 자신에게 유보시키기에 아무도 이분들을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분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극히 거룩하신 몸과 피에 봉사하는 직분, 즉 자기 자신들도 이를 영하고 자신들만이 다른 이들에게 분배하는 직분을 가지고 있기에 이 직분은 다른 어느 직분보다 더 큰 것인 만큼, 이 세상의 다른 어떤 사람에게 짓는 죄보다 이분들에게 짓는 죄는 더 큰 것입니다.”(권고 26)

 

“사제 자신들도 성체를 영하고 사제들만이 다른 이들에게 분배하는 주님의 지극히 거룩한 몸과 피가 아니고서는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지극히 높으신 아드님을 내 육신의 눈으로 결코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유언 10)

 

프란치스코가 지식 많은 신학자는 아니었지만, 당신이 믿고 있었던 신앙의 신비들을 그 마지막 결과까지 살았기 때문에 그는 신비들에 대해 아주 깊은 인식을 지니게 되었다. 프란치스코에게 성체는 예수님이 이루어 주신 구원의 열매를 베푸는 성사인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프란치스코가 성체를 그리스도교적 삶의 중심으로 보고, 생활과 사도적 활동의 중심으로 그리고 또 생명의 원천으로 보는 것이다.

 

“미사를 거행할 때 거룩하고 깨끗한 지향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극히 거룩한 몸과 피의 참다운 제사를 존경심을 가지고 순수한 사람이 되어 순수하게 드리도록 하십시오.”(형제회에 보낸 편지 16)

 

하느님께만 완전히 개방된 마음으로, 하느님을 위해서만 자유를 얻은 사람으로 미사성제를 거행할 것을 부탁한다. 수난과 십자가의 죽음을 받아들이시고 하느님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아버지의 뜻에 자기 자신을 굴복하신 그리스도처럼, 우리도 십자가의 제사를 재생하는, 그리스도의 제사의 재현인, 미사 감사제를 드릴 때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우리 자신을 아버지의 뜻에 합치해야 한다.

 

미사를 드리는 우리는 희생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와 함께 희생 제물이 되어야 하며, 그리스도와 같이 자기 자신 전부를 바쳐야한다. 하느님을 위해서만 살기 위해, 자기 자신에 대해 죽고 그분을 위해서만 존재하기 위해, 아버지를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자기 자신의 전 존재를 내놓아야 우리의 미사가 “나를 기념하는 예식”(형제회에 보낸 편지 16)이 될 것이니, “만약에 누가 다르게 거행한다면 배신자 유다가 되고, 주님의 몸과 피를 모독하는 죄인”(형제회에 보낸 편지 16)이 되는 것이다.

 

성체 성사는 세 가지의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성체 성사는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추종자들에게 하신 약속의 완수로서의 현존이며, 전 세계의 모든 제단에서 매일 거행되는 파스카 사건으로서의 십자가상에서의 제사의 실현이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참으로 실제적인 인격적 일치를 이루는 성사이다. 프란치스코는 이러한 성체성사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고 있었다. 프란치스코가 성체에 대해 하는 모든 말씀은 구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 김성학 사무엘 -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신부. 부산 기장성당 주임.

 

[성모기사, 2017년 2월호, 김성학 사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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